희생번트가 유용한 상황이 있을까?

얼마 전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로 한 희생번트는 유용할까?’라는 포스트를 작성하였다. 기대 득점의 감소를 근거로, 상대 투수가 커쇼일 때조차 희생번트는 팀에게 오히려 손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그래도 1점을 낼 확률은 오히려 증가하지 않을까?’ 또는 ‘한 점이 중요한 경기 후반에는 유용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많았다. 과연 그럴까? 이번에는 희생번트가 정말 유용할 것 같은 상황을 아예 가정하여 유용성을 다시 확인해보자.

9회까지 게임 스코어 0:0으로 팽팽한 경기가 있다고 하자. 이 때 9회초 타자가 1루로 출루하여, 노아웃에 주자 1루 상황이다. 이 때 희생번트를 하는 것은 팀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Tom Tango의 기대 승률(Win expectancy, WE)에 의하면, 9회초 노아웃에 주자 1루 상황은 기대 승률이 .587이다. 이 때 희생번트를 성공시켜 1아웃 주자 2루로 상황이 바뀐다면 기대 승률은 .566이 된다. 즉, 번트 성공으로 팀의 승리 확률이 오히려 2.1% 감소하였다. 평균적인 타자와 투수를 가정한다면 오히려 희생번트는 팀에게 손해인 셈이다.

9회말의 홈 팀 공격이라면 어떨까? 9회말 노아웃 1루 상황에서의 기대 승률은 .715이다. 이 때 번트를 성공시켜 1아웃 2루 상황으로 바뀐다면 기대 승률은 .703으로 감소한다. 이번에도 역시 팀의 승리 확률이 1.2% 감소하였다. 평균적인 타자라면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타격을 ‘시도’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나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번트를 시도해야 할까? 참고로 9회초 노아웃 주자 1루 상황은 리버리지 인덱스(LI)가 3.4이다. 즉, 이 때는 평균적인 상황보다 약 3배 더 중요한 상황이며,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15년 기준으로 평균 대비 타석당 기대 승률(WPA/PA)을 0.7% 수준으로 낮춘 타자는 .244의 wOBA와 50의 wRC+ 성적을 보였다. 이 정도 타자는 약 3배 중요도를 갖는 상황(LI=3)에서 팀의 승률을 2.1% 이상 낮출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타자는 희생번트를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번트 성공률이 좋다면…) 그런데 이 정도 성적의 선수들은 대부분 투수이다.

결국 희생번트는,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투수가 타석에 섰을 때, 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활용되어야 하는 작전이라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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