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랜디 존슨과 로저 클레멘스

2004년에 로저 클레멘스는 랜디 존슨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당시 랜디 존슨은 승/패를 제외한 모든 지표에 있어서 로저 클레멘스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수상 선정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기도 했다. 당시 둘의 성적을 간략히 비교해보자.

  • [’04년 랜디존슨] 35경기 245.2이닝, 16승 14패, ERA: 2.60, FIP: 2.30, 탈삼진: 290, fWAR: 9.5
  • [’04년 클레멘스] 33경기 214.1이닝, 18승 04패, ERA: 2.98, FIP: 3.11, 탈삼진: 218, fWAR: 5.5

클레멘스의 성적도 훌륭하지만, 존슨의 성적은 정말 압도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총 33경기에 등판해서 18승을 거두는동안 겨우 4번 밖에 패하지 않아 승률이 무려 82%다. 존슨의 승률이 5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클레멘스는 2004년 존슨보다 더 압도적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투수였다. 물론 클레멘스가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당시 휴스턴은 공격력이 강해서 많은 득점 지원이 가능했을 수도 있고, 팀의 수비력이 뛰어나서 실점을 더 적게 하도록 도와줬을 수도 있다. 또 존슨은 그 반대의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투수의 승/패 는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매우 중요한 성취물임에도 불구하고, 투수 본인 실력 이외의 요소에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기 위해, 팀 야수에 의한 효과를 보상하는 방법이 있다. (아이디어는 Tom Tango가 제안한 것이며, 수식 유도는 직접 했다.)

  • 승+ = 승 – k x α x ( 승 + 패 )
  • 패+ = 패 + k x α x ( 승 + 패 )
  • α = { ( 팀 승 – 팀 패 ) – ( 승 – 패 ) } / { ( 팀 승 + 팀 패 ) – ( 승 + 패 ) }
  • k = 4 / 7

수식이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원리는 단순하다. 1) 해당 투수 비 디시전 경기들의 팀 승/패를 확인하고, 2) 그 경기들의 승, 패의 합이 투수의 디시선 경기 수가 되도록 스케일을 조정한다. 3) 조정한 승과 패의 차이를 구한 후에, 4) 그 승차값에 적절한 상수(k)를 곱해서 야수의 기여도를 얻어낸다. 5) 얻어낸 야수의 기여도를 투수의 승에서 빼고, 패에는 더한다. 적절한 상수값(k)이란, 야수와 투수 모두의 기여도에서 야수의 기여도만 걸러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야수와 투수의 기여도를 4:3이라고 보고 있어, k=4/7을 사용했다. 좀 더 단순화하고자 하면 (본인의 기호에 따라) k=0.5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결과적으로 이 조정을 거치면 (일반적으로) 좋은 팀에 있는 투수는 승/패 기록이 하락하게 되고, 안 좋은 팀에 있는 투수는 승/패 기록이 상승하게 된다.

그럼 이제 2004년 존슨과 클레멘스의 승/패를 조정해보자. 존슨은 16승/14패를 거뒀고, 2004년에 D-백스는 51승/111패를 기록했다. 존슨이 기록한 승/패를 제외하면, D-백스는 35승/97패가 된다. 이것은 존슨과 무관하게 팀이 기록한 성적이다. 이를 존슨의 기록과 같이 30경기 디시전이 되도록 4.4로 나누면, 7.95승/22.05패가 된다. -14.1의 승차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4/7(.57)을 야수에 의한 효과라고 보면, 그 값은 -8.05이다. 결국 D-백스의 야수들은 약 8승의 승리를 앗아가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므로 이 값을 보상해주면 존슨의 조정 승/패가 나온다. 그렇게 얻어진 존슨의 기록은 무려 24승/6패가 된다.

반면 로저 클레멘스는 18승/4패었고, 당시 휴스턴은 92승/70패를 기록했다. 동일한 방법으로 승/패를 조정해보면, 클레멘스의 성적은  17승/5패가 된다. 여전히 훌륭한 승/패 기록을 유지한다. 하지만 존슨의 24승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둘의 조정된 승/패로 다시 성적을 비교해보자.

  • [’04년 랜디존슨] 35경기 245.2이닝, 24승 6패, ERA: 2.60, FIP: 2.30, 탈삼진: 290, fWAR: 9.5
  • [’04년 클레멘스] 33경기 214.1이닝, 17승 5패, ERA: 2.98, FIP: 3.11, 탈삼진: 218, fWAR: 5.5

이 성적이라면 아마 만장일치로 사이영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는 2013년 투수들의 성적을 조정해보자. 2013년 다승 랭킹은 다음과 같다.

  1. 맥스 슈어저: 21승 3패
  2. 아담 웨인라이트: 19승 9패
  3. 조던 짐머맨: 19승 9패
  4. 바틀로 콜론: 18승 6패
  5. C.J. 윌슨: 17승 7패
  6. 조지 데라로사: 16승 6패
  7. 크리스 틸맨: 16승 7패
  8. 클레이튼 커쇼: 16승 9패
  9. 잭 그레인키: 15승 4패
  10. 존 레스터: 15승 8패

그렇다면 조정 승/패로 따졌을 때는 순위가 어떻게 바뀔까.

  1. 맥스 슈어저: 21승 3패
  2. 조던 짐머맨: 19승 9패
  3. C.J. 윌슨: 19승 9패
  4. 이와쿠마 히사시: 18승 2패
  5. 조지 데라로사: 18승 4패
  6. 펠릭스 에르난데스: 16승 6패
  7. 클리프 리: 16승 6패
  8. 크리스 틸만: 16승 7패
  9. 바틀로 콜론: 16승 8패
  10. 요리스 차신: 16승 8패

맥스 슈어저는 조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21승 3패의 놀라운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타이거스가 강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점을 고려해도 슈어저는 본인이 등판한 경기에서 압도적으로 잘했던 것이다. 그의 2013년 승/패는 단순히 운에 기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반면 19승 9패로 다승 부분 2위에 오르고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1위표도 한 장 받았던 웨인라이트는, 조정 후에는 16승 12패로 성적이 다소 하락한다. 한편 이와쿠마와 에르난데스 두 매리너스 투수의 성적 상승이 눈에 띈다. 둘은 조정 전 각각 14승과 12승에 그쳤지만, 조정 후에는 18승과 16승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매리너스 소속 투수로서 이와쿠마가 기록한 14승 6패의 성적은, 평균 수준의 팀에서 뛰었다면 18승 2패(승률 90%)라는 엄청난 기록에 해당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불운의 아이콘인 클리프 리는 14승 8패에서 16승 6패로 상승하며, 크리스 세일 또한 11승 14패였던 성적이 14승 11패로 뒤집히게 된다.

참고로 LA다저스의 3인방 투수의 조정 승/패를 살펴보자. 조정 전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커쇼: 16승 9패, 그레인키: 15승 4패, 류현진: 14승 8패. 이를 조정 스탯으로 바꿔보면: 커쇼: 14승 11패, 그레인키: 14승 5패, 류현진: 13승 9패가 된다. 워낙 다저스가 2013년 강팀이었던 탓에 조정 후에는 성적이 약간 하락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세 선수 모두 겨우 1승 정도만 감소했다. 다저스와 같이 강팀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지금의 승/패 기록을 거두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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