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야구계에서는 투수가 같은 타자를 여러 번 상대할수록 성적이 떨어진다고 믿어왔다. 이를 “타순이 돌면 생기는 페널티(Time Through the Order Penalty, TTOP)”라고 한다. TTOP는 타자가 투수를 여러 번 상대하면서 투수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타순이 세 번째로 돌 때 상대 타자가 투수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는 타자가 투수의 투구 패턴을 학습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가설에 기반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일까?
톰 탱고(Tom Tango)의 연구
Tango, Lichtman, Dolphin(2007)의 “The Book”에서의 연구는 TTOP 현상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 중 하나이다. 이 연구에서는 투수가 타자를 처음, 두 번째, 세 번째로 상대할 때 각각의 wOBA(가중 출루율)를 비교했다. 그 결과, 타순이 반복될수록 투수가 허용하는 wOBA가 8~10 포인트 정도 나빠진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는 타자가 투수를 여러 번 상대하면서 투수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기존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경기 진행 중 투수 성적의 지속적인 변화(예: 투수 피로)와 순번 간 불연속성(예: 타자의 학습 효과)의 효과를 분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즉, 단순히 투수의 피로에 의한 효과일 수 있는 것이다.
라이언 브릴(Ryan Brill)의 최근 연구
대학원생 라이언 브릴(Ryan Brill)은 2023년에 “A Bayesian Analysis of the Time Through the Order Penalty in Baseball”라는 논문에서 이 가설을 검증했다. 이 연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의 MLB 데이터를 사용하여, 타자와 투수의 퀄리티, 홈 경기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투수의 기대 wOBA는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특정 순번에서 투수의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진행되면서 연속적으로 퍼포먼스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타자가 투수를 반복적으로 상대하면서 성적이 향상된다는 전통적인 TTOP 가설과는 다른 결과이다. 대신, 투수의 성적 저하는 피로 누적과 같은 연속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이 연구는 전통적인 TTOP 가설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타자가 투수를 반복적으로 상대하면서 성적이 향상된다는 가설보다는, 투수의 성적 저하는 피로 누적과 같은 연속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매니저들은 투수를 교체할 때 단순히 순번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투수의 피로도와 현재 성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연구는 야구 전략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앞으로의 경기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TOP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팀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아 투수 제임스 네일도 타순을 1~2바퀴 까지는 잘 던지다가 3번째 바퀴부터는 쉽게 공략을 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부분도 피로 누적으로 볼 수 있겠군요. 타자들이 어떠한 투수의 공을 여러 번 볼수록 구질의 구속, 구위 등에 익숙해져서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잘 칠 수 있는 부분도 ‘피로 누적’에 포함되는 지 아니면 다른 연속적인 요인인지 궁금해서 댓글 달아보았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이 분석 결과에 의하면, ‘타자들이 같은 투수의 공을 여러 번 볼수록 익숙해져서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잘 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투수의 성적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순이 1번이 되는 시점에 급격히 떨어졌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