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Wins Above Replacement)는 이제 야구 평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종합 지표 중 하나다. 하지만 투수 WAR에는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베이스볼-레퍼런스의 bWAR, 팬그래프의 fWAR, 그리고 팬그래프가 제공하는 RA9-WAR가 대표적이다. 세 지표는 모두 투수의 가치를 WAR라는 단일 숫자로 표현하려 하지만, 무엇을 투수의 책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fWAR는 삼진, 볼넷, 홈런을 중심으로 한 FIP 기반 지표다. 수비나 운의 영향을 최대한 제거하고 투수 본인의 순수한 투구 내용을 평가하려 한다. 반면 bWAR와 RA9-WAR는 실제 허용 실점을 기반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수비, BABIP, 득점권 성적, 잔루율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fWAR는 “투수가 얼마나 잘 던졌는가”를 측정하려 하고, RA9-WAR는 “실제로 얼마나 적은 점수를 내줬는가”를 측정한다.
그렇다면 실제 사이영상 투표는 어떤 철학에 가장 가까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AL과 NL 사이영상 투표에서 표를 받은 투수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각 투수의 실제 투표 순위와 여러 WAR 지표의 순위를 비교하고, 스피어만 순위 상관계수(Spearman Rank Correlation)를 계산했다. 상관계수가 높을수록 해당 WAR가 실제 기자들의 투표 결과를 잘 설명한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지표 | 상관계수 |
|---|---|
| bWAR | 0.631 |
| fWAR | 0.710 |
| RA9-WAR | 0.638 |
| (bWAR + fWAR) / 2 | 0.756 |
| (fWAR + RA9-WAR) / 2 | 0.764 |
| (bWAR + RA9-WAR) / 2 | 0.653 |
| (bWAR + fWAR + RA9-WAR) / 3 | 0.726 |
가장 높은 설명력을 보인 것은 fWAR와 RA9-WAR의 평균이었다. 단순한 fWAR보다도 높았고, bWAR를 포함한 모든 조합보다도 우수했다. 이는 현대의 사이영상 투표가 단순히 실제 실점만 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FIP 기반의 투구 내용만 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2023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블레이크 스넬은 180이닝 동안 2.25 ERA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실점 억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99개의 볼넷을 허용했고 FIP는 3.44였다. fWAR 기준으로는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그해 스넬의 fWAR는 4점대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2.25 ERA라는 결과를 높게 평가했고, 결국 스넬은 28장의 1위표를 받으며 압도적으로 수상했다. 이는 투표자들이 실제 실점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다.
반대로 2024년 잭 휠러는 200이닝, 2.57 ERA, 224탈삼진을 기록하며 대부분의 내용 지표에서 리그 최상위권이었다. fWAR 역시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크리스 세일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세일의 ERA가 더 낮았고, 전통적인 성적에서도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즉 투표자들은 FIP 기반의 투구 내용만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2025년의 경우도 비슷하다. 폴 스킨스는 187.2이닝 동안 1.97 ERA와 8.0 bWAR를 기록하며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반면 크리스토퍼 산체스는 202이닝, 2.50 ERA, 8.1 bWAR를 기록하며 bWAR 자체는 더 높았지만 2위에 머물렀다. 기자들은 단순한 WAR 숫자보다도 ERA, 탈삼진, FIP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팬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bWAR가 투표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흔히 “사이영상은 결국 결과를 보는 상이니까 bWAR를 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그렇지 않았다. bWAR의 상관계수는 0.631에 불과했고, 오히려 fWAR가 0.710으로 더 높은 설명력을 보였다.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현대의 투표자들은 이미 세이버메트릭스에 익숙하다. BABIP, 수비 지원, 잔루율 같은 개념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ERA나 bWAR가 아무리 좋아도 그 성적이 운이나 수비의 도움, 또는 보정값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라면 어느 정도 할인해서 평가한다. 그렇다고 ERA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결국 실제 실점과 순수 투구 능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fWAR와 RA9-WAR를 50:50으로 섞은 값이 가장 높은 설명력을 보인 것은 전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RA9-WAR는 실제 결과를 반영하고, fWAR는 투수 본인의 투구 내용을 반영한다. 기자들 역시 이 둘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2023~2025년 사이영상 투표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다. 다른 시대에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최근의 투표 경향을 놓고 본다면, 사이영상 투표는 bWAR 중심도 아니고 fWAR 중심도 아니다. 실제 성과와 투수 본연의 퍼포먼스를 모두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만약 오늘 사이영상 투표를 가장 잘 예측하는 단 하나의 WAR를 선택해야 한다면, 정답은 bWAR도 아니고 fWAR도 아니다. fWAR와 RA9-WAR의 평균이 가장 현실적인 답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