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5일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크리스토퍼 산체스와 오타니 쇼헤이일 것이다. 산체스는 7승 2패, 86.1이닝, 1.46 ERA를 기록하며 필리스의 에이스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타니 역시 6승 2패, 61이닝, 0.74 ERA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을 남기고 있다. 단순히 ERA만 놓고 보면 오타니가 앞서지만, 투수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인 이닝까지 함께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체스는 오타니보다 25이닝 이상 더 던졌고, 그 과정에서도 리그 최고 수준의 실점 억제 능력을 유지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누가 최고의 투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산체스를 선택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투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수의 역할을 공을 던지는 것에 한정한다. 조금 더 넓게 해석하더라도, 수비 상황에서 빠른 반응으로 번트를 처리하거나 투수 땅볼을 아웃시키는 것 정도까지가 일반적인 범위일 것이다. 실제로 WAR 계산에서도 투수의 수비 기여는 일정 부분 반영된다. 즉, 공을 던진 뒤에도 자신의 수비 능력으로 실점을 줄이는 것은 투수의 역할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는 없을까? 만약 투수가 자신이 등판한 경기에서 타석에도 들어서고, 그 타격으로 팀의 득점을 늘려 승리에 기여한다면 그것 역시 넓은 의미의 “투수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투수에게는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는 타석에 들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타니는 예외다. 그는 투수이면서 동시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
실제로 오타니는 2026년 현재 자신이 선발 등판한 경기 중 6경기에서 타석에도 섰다. 그리고 그 경기들에서 .273/.448/.545, OPS .994를 기록했다. 단순히 투수가 “생각보다 잘 친다” 수준이 아니다. 리그 최고 타자의 생산성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활약이 실제 경기 결과에 미친 영향이다. 오타니는 자신이 등판한 경기에서 타석에서만 RE24 +1.75를 기록했다. RE24는 상황을 고려하여 팀의 기대 득점을 평균보다 얼마나 증가시켰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즉, 오타니는 자신이 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타자로서 팀의 득점을 약 1.75점 늘려준 셈이다.
이를 61이닝 기준으로 환산하면 9이닝당 약 0.26점의 효과가 된다. 다시 말해, 오타니가 등판하는 날의 다저스는 평균적으로 9이닝당 0.26점을 추가로 얻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ERA 계산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ERA는 오직 실점 억제 능력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투수가 만들어낸 전체적인 경기 환경”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오타니의 실질적인 기여도는 ERA 0.74보다 더 좋게 평가할 수 있다. 타석에서 만들어낸 9이닝당 0.26점의 가치를 실점 억제 효과와 동일하게 간주하면, 오타니의 조정 ERA는 0.74에서 0.26을 차감한 0.48이 된다. 물론 이는 공식 기록이 아니고 일종의 사고 실험에 가깝다. 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흥미롭다. ERA 0.74도 이미 역사적인 수준이지만, ERA 0.48은 또 다른 차원의 기록이다. 실제로 시즌 첫 10경기 등판 시점 기준으로 ERA 0.48은 현대 야구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압도적인 성적이다.
현재 시점까지 2026년 최고의 투수를 한 명만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산체스를 선택할 것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졌고, 여전히 압도적인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수의 역할을 단순히 공을 던지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이 등판한 경기에서 팀 승리에 기여하는 모든 행위로 확장한다면 결론은 달라진다.
과연 원래 투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